오늘은 생각지도 않은 보람을 얻은 날이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서 트레픽잼을 뚫고 달라스 반대쪽에 있는 어느 가족의 집을 방문했다.
한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그 집에서는 세 분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에게 그 분들을 도와 주었으면 하고 요청한 분은 다만 소셜워커가 9시에 집으로 방문하는데 가서 통역을 해드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들어서는 나를 쳐다보는 세 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어리둥절하며 "손님은 오셨느냐"고 물었다.
똑부러지게 말을 잘하는 40세중반쯤의 따님은 영어도 그정도면 할 것 같고 굳이 나를 부르지 않아도 될 듯하여 나를 부른 이유를 물었다.
소셜워커가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소셜 시큐리티사무실에 가야한다는데 무엇때문인지 설명하기를 주저한다.
그 곳에 가서 해야하는 일은 20년 가까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메디케어를 받는 일이었다.
나이든 아줌마가 실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느냐는 눈초리가 세 분에게서 느껴졌다.
나중에 들으니 멀리서 온 것 같은데 헛탕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헛일삼아 그냥 가보기나 하자고 나섰단다.
그도 그럴 것이 65세면 모두들 혜택을 받는 노인 의료보험혜택을 전혀 못받고 있어 비싼 병원비 무서워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시는 할머님의 속앓이는 오랜 세월 그 가족의 숙원이었다.
할머니는 엊저녁부터 "나는 안간다."고 남편과 딸에게 버티시다가
오늘 아침 들어서는 나를 그렇게 깊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셨던가 보다.
다들 시큰둥하면서 억지로 대충 상황을 얘기하고는 당사자가 없으면 안되니
못마땅해 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한 차로 나섰다.
너무도 사전 지식없이 어리둥절하게 따라나선 나나 ,
무엇때문에 온 것인지도 모르고, 게다가 저는 이런 것 신청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더 어이가 없어한다.
모든 사람이 가기만 하면 2-3시간 무료하게 기다려야 하는소셜사무실에 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일로 여기는 터라 내게 아무런 사전설명도 안한 듯하다
소개하신 분은 나를 전문가라고 하신 모양인데 그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장애우회보에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등 사회보장제도를 번역해서 연재를 했고,
신문에도 전재하고, 요즘은 교회에 가서 강의까지 하는 형편이니 이론만은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막상 실무에 부딪치면 여러가지 사례로 인해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겁이 덜컥 났다.
자녀가 가도 안되고,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주어가며 비용도 많이 써봐도 안된 일이라
할머니는 오늘도 거의 포기상태이셨다 .
자존심이 강한 할머니는 그 일로 인해서 '나는 재수가 없는 사람, 남편은 무능한 사람, 자식들도 남의 자식만 못한가,'하며 여러가지 자괘감에 빠져계셨다.
연세에 비해 아주 강한 의지도 보이나 본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나신 듯한
표정과 강팍해 보이는 주름살이 강하게 패여 있었다.
그동안 그 분을 모시고 온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일을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더우기 요즘은 소셜연금이 바닥나고 있는 실정이라
정부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지 안주려고 애쓰는 빛이 역력한데
과연 그 함정을 빠져나갈 수가 있을까, 마음이 착잡했지만 내색할 수도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직원하나가 웹사이트로 신청할 수 있으며
네가 원하면 지금 같이 시도해보자고 하는 걸 우리는 직접 대면해서 해야한다고 거절했다.
우리 차례가 오고 깐깐한 사정관앞에 앉으니 첫 마디가, "그녀는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한 적이 없고 크레딧이 전혀 없으니 혜택을 못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뒤집은 나의 한마디는 " 그녀는 남편이 있고, 그 분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였다.
그렇다면 그녀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다시 약속을 해서 인터뷰를 하라는 것을 기다렸다가 오늘 끝내고 싶다 하니 불과 20분도 안되어 정식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은 아무리 돈 잘버는 자녀들도 감당하기 어려우니 메디케어보험이라도 혜택을 받게 해드려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본인이 일을 하지 않았어도 배우자가 10년이상 일을 하고 소셜텍스를 냈다면 배우자와 불구자녀에게는 반액정도의 연금과 함께 메디케어,메디케이드가 자동으로 부여된다.
인터뷰가 다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계시던 할머니는 예전과 다른 진행과정에
무언가 눈치를 채신 듯, "전에는 이런 곳에 오지 않았다"고 하신다.
"당연하죠, 오늘은 통과가 되었으니까요" 하니 무표정하던 할머니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신다.
오랫만에 활짝 편 얼굴을 보이시는 것 같다.
"이제야 실력자를 만난 것 같다"는 둥, "그동안 시간 낭비한 것이 억울하다"며 진작 나를 만났어야 했는데, 하시면서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까지 뭉클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속을 끓이셨을까, 친구들은 모두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고, 남편은 매달 검진을 받아 백내장수술도 녹내장수술도 마음대로 받는데 자신만 외톨이가 되었다고 한 마디씩 털어놀으시는 말씀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모두 짐작하게 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오는데 온 가족이 너무나 행복해했다.
할머니는 "내 가슴속의 한을 풀어주었다"며 여러가지 말로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큰소리로 웃으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딸도 나오라 하고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들을 하는데 몸둘 바를 모르겠다.
우연히, 그 것도 아무 생각없이 가서 그냥 말 몇마디하고 온 것뿐인데 좋은 결과를 얻고 나니 나도 오랫만에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잇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또 한번 경험한 순간이다.
어젯밤에도 잠을 한 숨도 못주무셨다는 할머니- 이제는 두발 쭉 뻗고 주무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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