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두 아이와 나를 지탱시커 준 것은 '마음' 이었다.
미국이민을 결심한 것도 지나친 한국인들의 관심때문이고,혼자된 여자와 아빠없는 아이에 대해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정?많은 사람들의 간섭을 피해서 살고자 함이었다.
오랜 미국생활의 피곤함을 끝내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각자 자신을 지켜낼 힘을 가졌다고 판단되자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음을 올때마다 느꼈고, 그 속에서 나자신을 지켜가며 적응할수 있을까 우려되어 우선
지방의 한 대학원에 등록을 했다.
한방 식품공학과에, 영문과를 나온 내가 연구소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 이과공부에 도전한 것이다. 그것도 나이 60에.
공부는 나의 평생 화두였고, 미국에서도 시간과 돈의 여유가 조금만생기면 아카데미에 등록해 한 가지씩 자격증을 따곤 해 왔기에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공부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여기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온지 정확하게 2년 반동안 학교안 연구소에서 생활하며 밤낮없이 실험을 하고 약초, 식초, 약선등과 한방에 관한 공부를 했다.
사람들을 덜 만나고, 어린 학생들을 친구삼아-그들에게 나는 희귀한 외계인만큼이나 별난 아줌마였으니까.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했고, 의논의 대상으로 여기며 함께 천연 화장품을 만들고, 약초에서 기능성 물질을 추출하며 밤을 새웠다.
틈틈이 평생교육원에서 영어 강의를 하고 학교내외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용돈을 벌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워낙 바쁘고 사람들과의 만남에 지쳐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는 연구소는 나에게 도피처이고
수행처였으며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마주하여 빛을 마음껏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비로소 태양이 만물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시간이 나면 속리산에 올라가 들플들과 마주하는 기회도 마음껏 가져 보았다.
나는 외계인이다, 혼자된 후로 그렇게 마음먹고 살면서 사람들과의 깊은 인연을 맺기를 피했다.
가볍게, 없어져도 찾지 않을 만큼만, 난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투명인간이다 하고. 사람들과는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잘 지내고,
어렵고 까다로운 과목을, 사전 찾아가며 영어논문들을 밤새워 읽고 PPT를 하며, 까다로운 교수님들의 수업과 논문을 무사히 통과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식에서는 나이들어 공부하느라고 수고했다며 특별상을 준다.
제자의 발효식품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 동시에 재직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효소, 식초, 앰플, 약초김치등 함께 연구하고 제품을 개발했다.
이 모든 것은 노후의 시골생활을 위한 전초적인 준비였다.
'☞ 문학 쉼터 ˚♡。ㅡ > ┌ 詩,사랑,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 (0) | 2015.09.17 |
---|---|
버리고 떠나기1 (0) | 2015.08.28 |
[스크랩] 용혜원시 모음 (0) | 2015.06.10 |
[스크랩] 러시아 최연소 모델 밀라나 쿠르니코바(Milan Kournikova) (0) | 2015.05.30 |
[스크랩] 타샤의 정원2 (0) | 201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