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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차마고도1

헬렌의 전화영어 2009. 7. 2. 01:56
[차마고도]는 현 중국  운남성의 보이차를 티벳과 중앙아시아로 실어나르던 길이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지도에서 보면 사천성 아래 운남성이 있고
소수민족인 다이족과 하니족이 만드는 차가 보이차(普洱茶)인데
 이 다이족과 하니족은 중국 한족 보다는 한민족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옛 중국에서 다이족은 백이(白夷)로 불리기도 했
하니(한이)족은 [한의 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중국한족이 보이차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보이차는 다이족, 하니족, 티벳인들 등
한민족과 비슷한 사람들이 즐겨먹어왔습니다.
 
보이차의 생산자인 하니족, 다이족들은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으로 보이고
고산지대에서 그 혈통과 전통을 상당히 지켜온 것으로 봅니다.
 
( 필자는 한민족만 중요하고 다른 민족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세계 모든 민족이 다 중요하지요.
세계 모든 민족을 다 존중해야지요.)
 
 
아시듯이 보이차는 [발효녹차]지요.
김치, 된장 등 한민족의 발효문화는 유명한 일이고
 
보이차는 [보이에서 나는 차]가 아니라
원래 그 이름이 보이차였고
보이차가 유명해지자 중국당국이 그 지역 이름을 보이(푸얼)로 바꿔버렸죠.
 
그럼 보이차(普洱茶)는 어디서 나온 이름이냐 하는 건데요
 
보이차(普洱茶)의 이(洱)자는 水 변에 耳인데
원래 耳자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표현한 글자로 보이고 있는 등
 
 
필자는 [발효녹차]인 보이차(普洱茶)가 원래
고대한국 중심지에서 즐겨먹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료는 차차 정리, 보강해서 공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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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퍼온글)
 
 
 
티베트 차마고도1
 

팍쇼 인근 칭커밭에서 만난 산중의 푸른 가족.
 
수천년 전부터 두 개의 문명길이 동양과 서양을 이어왔다.
하나는 중국의 서북쪽에서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이며,
또 하나는 중국의 윈난에서 티베트 동남부를 지나
네팔과 유럽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茶馬古道, Tea-Road)이다.
 
옌징의 소금계곡에서 소금짐을 싣고 10여 마리의 말을 이끈 마방의 행렬이 가파른 벼랑길을 올라 루띵마을로 가고 있다. 

 
차마고도의 역사는 실크로드와 비슷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이들은 차마고도의 역사가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고대의 무역로라고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700년대(商周시대)부터 윈난 지역에서 차를 재배해 마셨다는 것이고,
차마고도의 역사 또한 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차마고도의 핵심지역인 옌징에 남아 있는 소금계곡 풍경. 다랑논처럼 생긴 것이 모두 염전이다.
 
하지만 차마고도는 단순한 차 운송로에 그치지 않았다.
차를 운반하고 물물을 교환하면서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는
조금씩 옮겨지고 뒤섞이고 어우러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무역로이면서 문명통로였고,
가혹한 말(馬)의 길이자 힘겨운 삶(生)의 길이었다.
 

옌징을 지나 길에서 만난 마방의 행렬이 휴식을 위해 말에서 소금짐을 내리고 있다. 
 
타시룬포 사원에서 만난 소녀.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해발 5008미터 둥다라 산 가는 길에 바라본 초원 언덕의 양떼(위).
여행자와 사진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아흔아홉 굽이 감마라 고갯길(아래).
 
 

옛 차마고도 위에 건설된 318번 도로에서 만난 런저 스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중이다.
 

드락숨쵸 가는 길의 눈부신 유채밭 풍경.
 

라싸 시내의 하늘궁전 포탈라궁(위)과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아래).
 

라싸 외곽의 드레풍 사원 대법당(위).
네팔로 이어진 차마고도 노선 중 마지막 요충지인 시가체에 있는 타시룬포 사원 전경(아래).
 

인도로 내려가는 차마고도의 마지막 요충지였던 간체에서 볼 수 있는 간체쿰붐.
 
국내에서는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해 처음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올해 초 두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차마고도’를 소재로 한 다큐물을 내보낸 적이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방송사에서는 올 9월에
‘차마고도’에 대한 10부작 다큐멘터리를 내보낼 예정이다.
‘도대체 차마고도가 무엇이길래’, 일반 시청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럽에서는 이미 차마고도에 대한 관심이 실크로드를 능가하고 있다.
 

라싸 바코르 시장 골목의 차 도매상 풍경. 대발쌈에 싸인 덩어리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동안 차마고도는 베일에 가려져 ‘비밀의 길’이나 다름없었고,
오랫동안 외국인의 여행 불가지역으로 묶여 있었다.
차마고도에 대한 외국인의 허가증 발급이 유연해진 것은 근래의 일이며,
차마고도를 여행한 소수의 여행자들과 매체로부터
차마고도의 자연과 마을과 사람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면서
차마고도는 이제 모든 여행자의 로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차마북도에서 가까운 남쵸호수 가는 길에 바라본 라겐라 언덕 주변의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거기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거나 가장 험하고
가장 눈물겨운 것들을 만났다.
거기서 나는 오염되고 변질된 개발국의 모습이 아닌
미개발된 천연하고 순진한 지구의 모습을 보았다.
느리게 느리게 환생을 유목하는 숨찬 평화를 보았다.
이제서야 차마고도에 대한 책을 내놓고 나는
또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그 때의 감동과 느꺼움이 ‘씨앗불’처럼 남아서
이렇게 또 몇자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 글/사진: 이용한  http://blog.daum.net/binkond 
 
하늘에서 본 티베트 동남부, 차마고도 구간의 장쾌한 협곡과 산자락과 강줄기.
 
  
 
 
차마고도에 마지막 남은 마방(캐러밴)의 행렬이 옌징의 소금계곡에서 소금짐을 말에 싣고 위태로운 벼랑길을 지나고 있다.
 
 

차마고도 마지막 마방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옌징 소금계곡의 계단식 염전.
원시적인 소금 생산방식을 여전히 유지해오고 있다.
 
 

염전에서 일하는 한 여인이 두렁이 망가진 소금밭을 손질하고 있다.
 
 

훙라설산 가는 길에 만난 풍경. 한족 옷을 입은 티베트 아이가 칭커짚을 잔뜩 실은 야크를 끌고 가고 있다.
 
 

더친 인근의 차마고도 풍경. 차마고도는 향긋한 차의 길이었지만, 가혹한 말의 길이기도 했다.
 
 

티베트의 전통차인 수유차. 차를 우려낸 물에 야크버터를 첨가한 차가 수유차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이차의 역사와 차문화의 뿌리를
중국의 역사이자 자부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랜 옛날 차를 재배하고 교역하던 윈난의 남부 지역은
중국에 속해 있지도 않았으며,
차를 재배하고 유통시켰던 당사자도 다이족이나 하니족과 같은 소수민족이었다.
중국이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부르며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차문화의 뿌리가
사실은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에 있었던 것이다.
 

유채꽃이 활짝 핀 라웍마을 숙덴사원 풍경(위)과 해발 5008미터 둥다라 산 가는 길의 멋진 풍경(아래).
 
옛날 윈난에서 생산된 보이차는 오랜 저장을 위해
발효시켜 덩어리로 만든 다음, 대발쌈에 싸서
말과 노새에 싣고 티베트 깊숙한 곳까지 거래되었고,
주로 캄(티베트 동부)과 윈난의 대상이었던
‘마방’(馬幇, 말로 교역품을 실어나르던 상인조직)이 이 중계무역을 담당했다.
발효한 차를 대발쌈으로 싸서 운반한 까닭은
대나무 껍질이 습기를 막아주고 냄새를 걸러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라웍의 응안쵸에서 흘러내리는 파룽강과 설산이 어우러진 침엽수 계곡 풍경(위).
달력사진에나 나올 법한 드락숨쵸 풍경(아래).
 
지금도 대부분의 덩어리차는 이 대발쌈으로 싸서 운송하는데,
오는 동안 햇빛과 바람, 말땀이 차의 발효를 도와
윈난을 출발할 때의 차보다
되레 티베트에 도착했을 때의 차가 훨씬 맛이 좋다고 한다.
과거 차와 교역품을 실어나르던 마방에게는
차마고도가 생계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나 다름없었다.
 
하늘 호수 남쵸의 호숫가를 따라 코라를 도는 순례자.
 
지금이야 길이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차마고도의 길이란 것이 겨우 말 한 마리 지나갈 정도의 벼랑길에다
해발 5000m를 넘어가는 험한 길도 많았다.
따라서 마방이 길에서 사고로 죽거나 병으로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 것!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사원의 마니단에 장식된 야크뿔.
 
당시 윈난에서 실어간 차는
티베트 옌징에서는 주로 소금과 교환하였고,
라싸 인근에서는 말이나 산양, 야크 모피, 동충하초, 녹용과 거래하였다.
중국에서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로 실려간 교역품은 보이차뿐만 아니라
면화와 철, 금은 등도 포함돼 있었다.
 
라싸 드레풍사원 대법당과 하늘 높이 솟은 룽다.
또한 인도의 불교문화와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종이문화가
차마고도를 통해 넘나들었다.
실크로드가 담당했던 동서양 문명교류가
차마고도에서는 동양국 사이의 거미줄같은 동서남북 문명교류로 이어진 것이다.

라싸 포탈라궁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자.
 
차마고도를 통한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당나라(7~10세기) 때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당나라의 번성과 관련이 깊다.
외교와 군사적으로 팽창한 당나라는 군사력 증강을 위해
말의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힘이 좋고 빠른 전투마는 티베트의 전신인 토번왕국의 특산물이었던 바,
당나라와 토번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차와 말을 맞바꿈으로써
서로가 만족하는 교역을 성사시켰다.
 

시가체의 전원적인 풍경. 시가체는 간체와 더불어 티베트 차마고도의 마지막 요충지나 다름없었다.
 
사실 해발 4000m 안팎의 고원지대에서
야크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소화를 돕고, 장내의 기름기를 제거하며, 체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보이차는
더없이 훌륭한 음료였다.
티베트에서 차가 물과 불처럼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팔코르 사원 뒤편에 올라 바라본 티베트 최고의 불탑 간체 쿰붐과 간체 시가지 풍경. 
 
오늘날에도 티베트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이다.
이들에게 차는 생명수나 다름없다.
이들은 하루 수십 잔의 차를 보통으로 마셔댄다.
하지만 티베트인이 마시는 차는 우리가 마시는 맑은 차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이 마시는 차는 주로 찻물에 버터를 첨가한 수유차(Tibetan butter tea)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만년설 봉우리와 빙하계곡.
 
수유차는 찻잎을 끓여낸 물을 ‘돔부’라 불리는 차통에 넣고,
버터와 소금을 넣은 뒤 100여 회 이상 저어서 만들어낸다.
그냥 마시는 보이차에 비해 수유차는 열량이 훨씬 높아서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찻잎에 함유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딱 맞는 차가
바로 수유차인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구름의 바다.
 
3000여 년의 기나 긴 역사와 수많은 애환과 곡절이 서린 차마고도는
이제 무역로에서 조금씩 관광코스로 탈바꿈하고 있다.
만일 차마고도의 길이 그토록 가파르고 험난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차마고도의 숨결은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위험했으므로 그 길은
오히려 개발과 현대화의 과정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오늘날 수많은 여행자의 로망으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 글/사진: 이용한 http://blog.daum.net/binkond
 
옛 차마고도의 갈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티베트,차마고도를 따라가다>(넥서스, 2007) 참조.
 
 
 
 
출처 : 마고는 말한다...
글쓴이 : 마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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