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의 전화영어 2012. 4. 11. 14:43

은상(殷商 : 서기전 16 세기 - 서기전 11 세기) 나라 때 갑골문자 가운데 안마(按摩)와 열위(熱熨)라는 문자가 나타나 있다.

 

갑골문자는 귀갑(龜甲 : 거북의 등껍데기)과 우견갑골(牛肩甲骨 : 소의 어깨쭉지 뼈) 위에 새긴 중국 고대의 상형문자이다. 중국 문자의 시조이며 점복(占卜)의 기록을 새긴 것이다.

 

갑골복사(卜辭)는 은상(殷商) 나라 때 귀족의 서류철(File)이나 마찬가지였다. 은상 귀족들이 제사 지낼때, 전쟁터에 나갈때, 사냥을 나갈때, 질병을 치료할 때와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고 싶을 때와 일기예보와 기타 중대사(重大事)를 결정할 때 반드시 점을 쳐서 귀신에게 물어서 답을 얻었다. 매번 점을 칠때 마다 귀신에게 물어 본 사항과 점을 친 시일과 시간, 길흉의 결과를 귀갑이나 우견갑골 상에 기록해 두었다.

 

하남성 안양시(安陽市)에 있는 은허(殷墟)에서 약 10 만 조각의 갑골복사를 발견하였다. 갑골문에 사용된 한자는 약 4000 자 정도나 된다. 지금까지 해석된 것만 약 2000 자 정도되며 나머지 2000 자는 아직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원시인들은 또 무도(舞跳) 즉 도인(導引)을 즐겼다. 악륜춘족(愕倫春族)과 장족(藏族)들은 야외에서 노숙(露宿)할 때는 잠자기 전에 반드시 상당한 시간동안 배와 등에 뜸을 하고 난 후에 잠을 잤다. 왜냐하면 풍습(風濕)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북방 한냉지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열위와 화료요법을 사용했다.

 

소문(素問)의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에 "북방자(北方者), 천지소폐장지역야(天地所閉藏之域也). 기지고능거(其地高陵居), 풍한수열(風寒水열), 기민락야외이유식(其民樂野外而乳食). 장한생만병(藏寒生滿病), 기치의구설(其治宜灸焫). 고구설자(故灸焫者), 역종북방래(亦從北方來)" 라고 쓰여있다.

 

다시 말하면 "북방 사람들은 자연계의 기가 폐장된 지역에 살며 지세가 높은 구릉에 산다. 기후는 비교적 바람이 많고 한랭하다. 당지 거민들은 야외에서 잠을 자는 것을 즐거워하고 소와 양의 젖을 주식으로 삼는 유목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내장이 한기(寒氣)의 영향을 입어 창만(脹滿) 질병에 많이 걸린다. 이와같은 질병엔 구법(灸法)치료가 적합하다. 그러므로 쑥뜸 치료 방법이 북방에서 전래되었다." 는 뜻이다.

 

구설(灸焫)은 화애소작(火艾燒灼)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하면 쑥에 불을 붙여 살을 태우는 구법치료를 뜻한다. 최초의 구설화료는 쑥을 사용하지 않고 불을 직접 살에 접촉시켜 피부의 일부를 태웠다.

 

맹자(孟子)의 이류상(離類上)에 보면 "칠년지병(七年之病), 구삼년지애야(求三年之艾也). 구위불축(苟爲不畜), 종신부득(終身不得)" 이라고 쓰여있다.

 

다시 말하면 "칠년동안 지니고 있었던 병이 삼년동안 뜸을하여 치료되었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우며 치료하면 죽을 때 까지 치료되지 않는다." 는 뜻으로 열심히 뜸을하면 병이 잘 치료됨을 의미한 것이다. 불 치료와 열 치료는 온난감각을 일으키며 근육과 피부의 한냉을 제거시켜 주며 진통작용을 한다.

 

안마는 자기 자신이 하던가 남의 손을 빌려 피부를 누르거나 마찰해 주는 요법으로써 지혈효과와 진통효과가 있으며 가장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자아(自我) 치료법이다.

 

도인은 근육과 뼈관절을 움직이는 동작으로 무도 또는 체조와 같은 것이다. 고인들은 안마와 도인과 열위와 구설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경락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과 인도와 희랍 등 세계 어느 나라의 상고(上古) 문명과 역사를 관찰해봐도 침구치료와 경락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오직 중국의 고대 특수문화 배경의 산물이다.

 

1972 년 호남성 장사(長沙)에서 발굴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출토 의서(醫書)인 음양십일맥구경(陰陽十一脈灸經)과 족비십일맥구경(足臂十一脈灸經)은 황제내경 보다 먼저 쓰여진 책이다. 이 책속에 경락의 분포만 있고 혈위(穴位)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2 경락과 14 경락이 형성되기 이전에 11 경락 밖에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1 경락을 발견하기 이전에 몇 개의 경락이 발견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혼란의 시기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만 경락이 흐르는 경로는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아직 혈위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경락의 선상(線狀)분포 형태만은 발견하였었다.

 

고인들은 피부로 보이는 근육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 덩어리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인체에 경락이 흐르고 있다는 희미한 예측은 송곳 점쟁이들의 영감과 뜸 치료와 안마를 통한 특수한 반응으로 가능했다. 은상족(殷商族)들 중에 갑골 송곳점이 성행했었다. 그들은 송곳과 뜸을 사용했다. 무사(巫師)들은 송곳으로 찌르고 불로 지저댈 때 생기는 열문(裂紋)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고인들은 지압을 하거나 뜸을 할때 인체의 표면에 발생하는 전도감(傳導感)과 홍색선상(紅色線狀) 분포현상에 관심을 집증시켰다. 현대의 경락 연구학자들이 인체 표면의 경락민감 현상 즉 전도 감각 현상을 반복 실험하여 증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인들도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전감현상과 복조(卜兆)형상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복조형상이란?  송곳과 뜸을 이용하여 치료할 때 나타나는 열문을 칭한다.

 

무사들은 선상 전감 현상과 그 주행(走行) 방향에 중점적으로 주의를 집중시켜 치료할 경우 인체의 특정 부위의 병통(病痛)이 사라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내장과 관련된 경락을 점차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체표에 나타나 있는 정맥과 근육과 인대와 건(腱)들의 망상(網狀) 분포와 선상(線狀) 분포에 대한 연구끝에 한 개의 계통적 경락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경락을 하나 씩 발견하기 시작하여 열 한개의 경락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경락을 반복하여 지압과 뜸을 하면서 어떤 점에서는 환자들이 더욱 민감함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혈위(穴位) 발견의 시초였다. 혈위를 발견하고 나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여 혈위의 범위를 축소시켜 결국 침점(針點)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인(導引)도 경락계통을 발견하는데 한 몫을 담당해 왔다. 왜냐하면 근골이 한기(寒氣)의 영향을 입어 위축되고 비틀어져 있으므로 기(氣)가 체(滯)하여 있을 때 팔다리를 움직여 줌으로써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사실 근육과 인대와 건(腱) 역시 경락계통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캐나다.율산(栗山)석영창의 한의학이야기
글쓴이 : 돌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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