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꿈
할머니의 꿈
할머니는 오늘도 머리가 아프고 갑작스런 열로 이불위에 힘없이 쓰러졌다.
한동안 누워 안정을 취하신 후에야 조금 회복이 되었을 뿐
여전히 어지럽고 기운이 빠지셨다.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이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노인들의 삶에의 기본이 되었듯이
할머니도 남존여비사상에 철저히 길든 남편의 정신적인 폭력으로
늘 억울하다고 느끼며 살아 오셨다.
남편이 자식들을 낳아놓고 자신은 다른 여자와다른 살림을 차려
자기 인생을 즐기는 동안 할머니는 조금도 한눈을 팔지않고
자식들 기르는데만 온 정성을 기울였다.
이제 자식들마저 50-60대가 되고 모두 자기들 인생을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고
당신은 오늘, 내일 하늘로 떠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할머니가 이세상을 하직할 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태로 걸음걸이는 아기처럼 종종걸음을 쓰러질 듯 걸으시고,
뒷뜰에 만들어놓은 텃밭은 언제 주인을 잃을 지 모르는 처지이지만
봄이 오자 할머니는 또 다시 시금치, 파, 오이, 마늘, 호박 고추, 상추, 부추등
한국의 산골을 연상시킬 정도로 텃밭을 잘 일구어 놓으셨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어 자신과 평생 친구해준 땅과
여전히 친구하며 대화하고 화해하고 잘 지내신다.
다른 사람같으면 벌써 몸져 누웠을 중병을 몸에 갖고도 아직 거동을 하시고
보조기에 의지해 아침마다 1시간을 걸으시는 것은
자신과 평생을 같이 해준 친구가 있었기에, 그리고 아직도 배신하지 않고
자신과 놀아주는 그 자연에 의지해 고독, 외로움과 싸워낼 수 있었다.
잠시 누워서 기척이 없으면 할머니를 흔들어 본다.
할머니는 풀을 뽑다가 기운이 다하면 풀위에 이마를 기대고 쉬신다.
오늘도 쓰러질 듯 밭에서 돌아와 누워서 죽은 듯이 계쎴다.
조금 회복되신 할머니는 일어나 앉으신다.
일어나 앉으시기 전에 하시는 말씀-
왜 빨리 안데려가고 이렇게 힘들게 만 하는걸까.
하나님이 할머님을 너무 사랑하시나봐요.
거의 감은 듯하던 눈길이 약간 위로 떠지시며
느닷없이 '내가 젊어서 꼭 해보고싶은 게 있었어.' 하신다.
금방 들어오다 만난 며느님이 저러다가 돌아가시려나보다 고 했는데
갑자기 꿈이야기라니.
혹시 헛소리를 하시는 건 아닌지 놀라서 쳐다보았다.
무슨 꿈이에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김삿갓처럼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싶고 싶은 꿈.'
'바람처럼 구름처럼 아무것도 얽매이지 않고
가다가 자고 싶으면 아무데나 누워서 자고
먹고 싶으면 아무집이나 두들겨서 얻어 먹고,...'
나는 역마살이 있어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실제로 역마살을 등에 업고 수십년 집을 떠나
미국땅에서 방랑자가 되어 살다가
85세가 된 할아버지도 당장 이웃에 살고 있다.
인간의 영원한 꿈은 장
방랑자인지도 모른다
다만 용기를 내어 떠나보았는가의 차이일 뿐
정말 의외였다.
할머니에게 그런 꿈이?
그저 옛날 할머니들은 시대가 만들어준 질서속에서 순응만 할 줄 알고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은 채 살고 계신다고 믿었다.
잠시라도 그런 꿈을 꾸셨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는 시대를 앞서 가는 개척자로 보였다.
일엽스님이나 나혜석,김명순처럼 드러내고
자신을 세상에 알리면서 시대의 모순에 저항하지않았으나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세상에 저항하고 싶었으나 소리도 내보지 않고
남자들의 억압에 눌린 채 자신의 인생을 유기하고 말았는지
새삼 가슴속에 넣어두었던 나 자신의 꿈이야기도 입에서 술술 나왔다.
운명이 그렇게 만들었고 나 자신이 하나하나 준비해왔듯이
그렇게 무리없이 하고픈 베가본드의 시대가 머지않아 내게 올 것이니
그래도 개화된 세상에 태어남을 다행이라 해야할까.
자식들 키워놓고도 자신을 위한 연금이 여행하면서 살아도 될만큼은 나오건만
이제 몸이 말을 안듣고 자식들이 놓아줄리 없으니
그저 꿈으로 끝나야하는 할머니의 꿈
나도 더 늦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겠다.
젊어서는 자식들 키우느라 접어두었던 꿈 이제는 나이들었다고
자식들이 나의 행동을 통제하려한다.
다른 이들이 사는 것처럼 얌전히 집이나 지키면서 또 하고픈 일을 접다가는
할머니처럼 집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하고
꿈으로 끝나버릴 모험의 시도,
무엇이 무서워서 못떠나는 건가
좋은 옷, 편안한 잠자리 집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 ,자식들에 대한 체면,
다른 사람들의 이목 ,가끔은 화려하게 자신의 하고픈 일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남들에 보이기 위해 멋지게 치장을 하고
자신이 일상의 평범함에서 벗어났음을 자랑하며 멋을 부린다.
그런 것이 아닌 진정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필요하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고달프고 외롭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