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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몰로 연매출 100억원 올리는 김소희 주부의 대박 성공기

헬렌의 전화영어 2009. 1. 6. 09:49

 

    잘나가는 회사의 사장도,고위직원도 아닌 쇼핑몰 사장님이시라구 하네여

     

    500만원으로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로 연매출 100억원 올리는 김소희 주부의 대박 성공기




    주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 하루 10만원만 벌어도 소원이 없다던 소박한 꿈은 연매출 100억원을 육박하는 탄탄한 기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새내기 주부 김소희씨의 인터넷 쇼핑몰 성공기.

    “고부갈등, 주부 우울증 극복하려고 시작한 일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죠”


    어릴 때부터 옷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던 김소희씨. ‘밥은 굶어도 옷은 사 입는다’는 게 생활신조나 다름없던 학창시절, 그녀는 공부보다는 멋 부리고 옷 사는 데 관심을 더 쏟은 사춘기 소녀였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옷 잘 입는 애’로 소문이 났고 당시 브랜드란 브랜드는 모두 평정했다고 한다.

    “내 옷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었어요. 대학에선 의상디자인을 전공했고요.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 동대문에서 일했죠. 그곳은 패션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러다 친구와 동업으로 가게를 차렸는데 연이어 실패하고 말았어요.”

    떡잎부터 알아본 남다른 패션 감각


    의욕과 기대만 너무 앞섰던 걸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어렵사리 자금을 마련해준 부모님 뵐 면목도 없이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빚만 지고 의욕을 상실한 채 패션 사업에 대한 꿈을 접은 그녀. 그리고 이번엔 전혀 엉뚱하게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 전광진씨를 만났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적극적이던 남편과는 속도위반,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한창 깨소금 볶는 냄새가 진동해야 할 시기에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연애기간이 너무 짧은 데다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겼어요. 시댁 분위기는 제가 자란 친정과는 많이 달라서 하루하루 딴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더욱이 임신한 상태로 결혼을 해서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가족들이 잘해주는데도 마음은 영 불편했다. 입덧으로 몸이 힘든 데다 마음까지 힘들어지니 그녀는 여러모로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이벤트 회사에 다니던 남편의 잦은 출장과 외박이었다.

    “남편 직업이 그렇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그때는 남편이 없는 동안의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남편만 바라보고 살던 해바라기 같은 존재였던 거죠. 서로를 충분히 알아가는 연애 과정 없이 결혼한 만큼 그런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던 것 같아요.”

    당시 그녀가 유일하게 위로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던 것은 바로 태어날 아기.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엔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기를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의 미묘한 갈등이었다.

    “임신 중에는 어머니와 부딪히지 않았어요. 꽤 사이가 좋은 고부간이었는데. 어머님 눈에는 내가 아직 철부지로만 보이고 못 미더우셨나 봐요. 그래서 딸 지율이를 제게 맡기지 않으셨어요. 젖 먹일 때를 빼고는요. 내가 낳은 아기를 안아보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이상한 상황이었죠. 육아뿐 아니라 지율이 챙기는 것은 모두 어머니가 하셨어요. 생활력 강한 시어머니의 각별한 손녀 사랑이 며느리인 제겐 큰 상처가 되었죠.”

    시어머니와 육아 문제로 갈등이 생기니 중간에서 불편한 것은 남편이었다. 하루는 보다 못한 남편이 어머니에게 “왜 애 엄마에게서 아이를 빼앗으려 하시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시어머니와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한 지붕 아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즈음 남편은 술에 취해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고 집밖으로 겉돌았다. 결혼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부부 사이엔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서슴지 않고 오갔다. 그사이 그녀는 말로만 듣던 극심한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분가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어요. 그러는 사이 제 우울증은 더 심해졌구요. 아마 그즈음부터 막연하지만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이래저래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아줌마인 저를 반기는 데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꼭 돈을 벌기보다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다른 일에 비해 창업비용이 적게 들고 그나마 조금은 자신이 있다 싶은 분야가 바로 옷을 파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사이트를 사고파는 커뮤니티를 통해 ‘핑키걸’이라는 사이트를 인수했다. 기존 회원이 3000명이나 된다고 했지만 사이트는 거의 죽은거나 다름없었다. 인수비 400만원. 그러나 물건을 사는 데도 큰돈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당장 사이트를 인수할 여건은 되지 않았다. 우선 매달 25만원을 내고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꿈을 펼칠 공간이 생긴 거죠. 그동안 눌러놓은 숨은 감각을 부활시켜 예쁘게, 멋지게 꾸미리라 다짐하면서 한 달에 10만원만 벌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컴퓨터 왕초보이던 그녀는 어깨 너머로 사이트 운영법을 배웠다. 인터넷 쇼핑몰이 초보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면 운영하는 데 그리 어려움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이미지로 실물을 대신하는 만큼 사진 이미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지 제작에 공을 들였다.

    500만원으로 시작, 100억원 매출 올리기까지


    “지금도 사진 올리는 데 굉장히 공을 많이 들여요. 직원이 늘어났어도 아직까지 사진을 올리고 업데이트하는 일만큼은 직접 해요.”

    심혈을 기울여 오픈한 사이트의 첫 달 매출은 1000만원, 둘째 달은 2000만원에 달했다. 가족 모두가 깜짝 놀랐다. 물론 그녀도 상상하지 못한 금액에 어리둥절했다.

    “정말 어리둥절했어요. 평균치 매출만 유지해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한 아이템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이 나지 않나. 이건 완전 기대 이상이었죠.”

    포장하고 배송하는 손길은 거의 불이 났고, 폭주하는 주문량에 상품을 대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늘어난 직원은 현재 26명, 시댁의 작은 방에서 시작한 사무실은 현재 140여 평에 달할 정도가 됐다.

    그녀는 사업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척 쑥스러워했다. 솔직히 자신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것.

    “옷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거래처를 트는 것은 조금 유리했어요. 오프라인 쇼핑몰을 두 번 실패하면서 배운 것 중 중요한 하나는 소위 `‘잘 팔리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시장의 흐름, 고객의 요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다음으로 신경 쓴 것은 바로 촬영. 촬영장소도 현실감 있게 다양하게, 최대한 많은 사진 컷을 쓰고 모델도 자신이 직접 했다. 무엇보다 직접 모델로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옷을 입는 스타일이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자신 있는 그녀. 오히려 본인처럼 평범한 사람이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더 제격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헤어스타일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헤어스타일에 따라 전체 스타일이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옷 자체뿐 아니라 코디법과 전체 스타일에도 무척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바로 바로 업데이트도 하구요.”

    사이트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도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동참했다. 이제 그녀의 삶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핑키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핑키걸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제가 CEO가 된 데에는 남편의 역할이 컸어요. 사실 제가 CEO가 되는 문제는 조금 예민한 사안이었죠.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사장이 되고 아들이 그 밑에서 일한다는 게 영 꺼림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남편이 핑키걸의 새로운 조직을 구상하면서 이 사업을 일궈낸 당사자가 바로 저라고, 자기는 제 꿈을 서포트하겠다며 경영지원본부장 역할을 자처했어요.”

    핑키걸은 불과 1년 6개월 동안 급격히 성장했다. 5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그 짧은 시간동안 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일의 성공 이면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엄마로서 딸에 대한 미안함이다. 올해 4살인 딸 지율이는 지금껏 제대로 엄마 손에서 자란 적이 없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더 그랬다.

    “4살이면 엄마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이이고, 또 정서적으로 교감을 가장 많이 할 때인데 늘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일을 시작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던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제는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됐다. 아직 멀었지만 조금씩 시어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제 꿈은 핑키걸 자체 브랜드를 갖는 거예요.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 오프라인으로 핑키걸 하우스라는 건물을 지어 이른바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토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올해 나이 스물여덟, 이제 막 비상을 시작한 그녀지만 그녀의 날개는 그 무엇보다 크고 튼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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