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또 버리기
어제 어떤 블로그에 갔다가 감동적인 글을 읽고 많이 모셔왔다.
소설이나 허구적인 내용,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설보다는한 사람의 철학과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는 책이 훨씬 감동적이다.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한,
남은 인생이라도 그렇게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을 해가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보고싶은 살을 산 사람의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사도라 덩컨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춤 속에 인생을 산 사람이나
천경자씨의 그림에 대한 고집과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낸 수필집,,
홍신자씨가 뉘늦게 자기가 하고싶은 발견하고 그 일에 정열을 바치고 있고,
한 젊은이가 가난속에서 뜻을 세우고 공부해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룬 얘기,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에 바친 삶, 보통 사람이 보면
미친 사람들이야기만 좋아한다고 할, 그런 사람들의 솔직한 ,좋아하는 일을 한 사람의
자서전을 좋아한다. 자신을 미화하지 않은 아주 솔직한 ,인생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창조적인 자신만의 일을 찾기보다는 하면 안된다는 교육만 받고 자랐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어른들의 사회가 얼마나 모순인가 느끼면서도
고민만 하며 바꾸지 못하고 반항하다가 어느 새 그 세계의 주도적인 위치가 되는
늘 문제야만 외치다가 그 문제속에 자신도 나뒹구는 한심한 모습으로 살았다.
틀을 과감히 깬 사람들을 존경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일, 하고싶은 일에
바치는,열심히 돈을 벌되 자신의 꿈과, 뜻있는 일에, ,사회를 위해 모두 내던질 수 도 있는
인생의 반 이상을 사회가 원하는대로 어른들이 원하는대로 살았다.
이 세상에 만든 인연들을 위해 하고싶은 일, 가고 싶은 길, 모두 잊고 살았다.
이제 힘없어 걸을 수 없을 때까지 하나하나 진짜 나의 일을 찾아나설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아주 하찮은 일일지라도 그 속에 작은 보람이라도 있다면
힘없어 걷지 못하면 붓이라도 들 힘은 남아 있겠지, 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언제고 다시 붓을 드는 날은 걸작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늘 어떤 그림일까를 상상하며 걸어다닌다.
또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순수한 사람들만 사는 곳에 가 단 몇년이라도 살고 싶다.
그들과 이웃하며, 아무런 가식이 없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며 그들을 닮으려 애써보련다.
그들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그래서 늘 버리는 연습을 한다.
아직도 틀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준비될 때까지 틀깨는 연습을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올 때 빈 손으로 왔듯이 떠날 때도 빈 손이 되기 위해
오늘도 버린다 . 한꺼풀 벗어던지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