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의 전화영어 2008. 10. 15. 22:31

 오늘도 두 사람의 인생을 보았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삶의 모습을 보고, 듣고, 읽고,가까이서 느꼈다.

79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은 시니어 아파트에 사시는 한국인부부다.

몇 개월동안 다리가 부어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했다. 연세에 비해 주름도 없으시고 약간 비대해보이는 모습이 알고보니

부기가 빠지지 않은 것이란다.

 

 할아버지는 고혈압, 콜레스테롤, 중풍까지 온데다 자동차사고로 양쪽팔이 어긋난 채 살고 계신단다.

부잣집 아들로 테어나 곱게 자라 요즘도 온종일 갖가지 과일에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드셔야 직성이 풀리시고

그 몸으로 밖에 자주 외식도 나가셔야 한다며, 아파트에서는 그렇게 외출을 자주 하니까

아래충 방이 있어도 옮겨주지 않아 이층을 힘겹게 오르내리신다.

자녀는 시애틀과 뉴욕에 살아서 자녀와 함께 살려고 가보았지만,

시애틀은 늘 날씨가 흐리고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 많아 여름에도 히터를 켜야만

지낼 수 있어 할아버지가 싫다고 하신단다.

 

 뉴욕에도 가보았지만 유대인들이 사는 부촌에 사는 아들네는 며칠이 지나도 사람하나 구경하기 어렵고

시내는 너무 복잡해 나가지도 못하고 길은 비좁고 혼잡해 살 수가 없었다.

결국은 달라스로 다시 돌아와 노환이 찾아온 몸을 서로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신다.

간호사와 세탁,청소 도우미가 오긴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한다.

세탁방에 가면 도우미가 머무는 1시간이 지나 버려 더 이상 잡을 수도 없고

결국 장도 할머니가 보신다.

할아버지는 치매까지 오셔서 가끔 고혈압약을 하루에 두번 드시고 쓰러져 정신을 잃으신다.

대부분의 이곳에서 사시는 할머니들은 자식들이 너무 살기에 바빠 한집에서도 돌보기 어려우니

자청해서 아파트를 얻어 나오신다.

 

  미국에 살다보면 미국사람들의 습관에 하나둘 물이 드나보다.

자식과 같이 살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못받으니

혼자 살더라도 자식들 신세지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간혹 사람들과 자식들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시는 걸 보면 이분들도

자식에게 당신들이 바친 모든 것을 기대했다가 실망하신 눈치이다.

어찌 부모가 자식에게 주었던 마음을 돌려 받을 수 있겠는가,

 

 교회의 장로로 존경받는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들려주긴다.

늙고 연로한 어머니를 이 곳 너싱홈에 보냈다. 치매가 오니 치매환자들 돌보는 곳으로

옮겼다. 대부분 보호자들에게서 외면당하는 노인들을 수용하는 곳이라

보호자가 자주 찾지 않으면 그 곳 간호사나 돌보는 사람들에게 홀대를 당하는 모양이다.

그 장로님은 일년 내내 어머니를 한번도 찾아가지 않는단다.

자식에게는 벤즈 자동차를 사주고 호화판으로 사는  그 모습에서 인간의 또 다른 면이 존재함을 느꼈다.

분명 그 어머니의 자식교육에 문제가 있었고,  자신의 인생관리에도 착오가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한국인의 정서로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 간혹 있다.

 

 왜 사람들은 돈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할머니도 자식자랑을 하시지만 그들의 부모에 대한 배려에는 부족함을 느끼는 듯했다.

적은 돈이라도 자식에게 모두 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셨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가 끝일까?

 

 할아버지의 여전한 투정을 다 받아내시며 너싱홈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은가 권유하는 다른 환자의 말에

그 양반 성격에 거기 가서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지르다가

치매환자 수용소로 가 자기 성질 못아겨내면 돌아가시고 말거라며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셨다.

 두 분만 사시면서도 한국할아버지들의 말도 안되는 독선에 혀를 차면서

 평생 떠받드는 삶에 길이 든 듯한 할머니,

 

이제는 삶의 끝자락이니 어리광을 그만 버리시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대로

감사하신다면 할머니의 정신적인 고통만이라도 감해질텐데 ...

그래도 아직 지팡이에 의지해 걸으시기는 하니까 정 힘이 드신 날에는

저에게 전화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또 하나의 나의 미래모습이 오버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