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가 30년 전의 가정방문,
꿈결이던가, 생시였던가.
결석한 반아이의 낙동강가 집을 찾아 가던 길
길가 수풀 속의 조그만 옹달샘에
하이얀 아기 물뱀이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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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나룻배위에 싣고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선생님이 그 먼 동네에 찾아온 것도 처음이지만
서울내기 여선생의 가정방문은 드문 일이었기에.
지나가는 길목의 학생집은 모두 들러
나들이가듯 즐거�다.
그렇게 예쁜 마을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 사는 이 아이들의 마음도
정말 예쁠 것 같앗다.
훗 날 어른이 되어 나를 찾아온 그 아이에게서
여전히 순박한 고향의 냄새가 났다.
그 날 그 아이는 나를 다시 읍내의 자취방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갔다.
자전거위에는 학보모들이 가지째
꺾어준 감나무,토실토실한 알밤,곡식들을 가득 싣고
반아이의 집은 가장 깊이 있었다.
지금도 그 곳은 내 기억에 낙동강 건너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오지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분명 지금 다시 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게다.
그 곳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가끔 꿈 속에서 고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본채옆에 마치 장난감처럼
정갈하게 새로 지붕을 엮은 듯한
초가집이 서 있었고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서 있다.
가지가 축 처질 정도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
그 감나무처럼 풍성하게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20년이 지나 물어물어 나를 찾아온 아이
이미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었지만
늘 선생님이 그리웠다며
고향의 집은 결코 없애지 않을 거란다.
선생님 연세드시면 제가 고향에서 모실거라며.
지금도 그곳은 서울내기인 내게 고향같은 곳이다.
죽기 전에 꼭 가서 한바퀴 돌며
고향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찾아 보리라.
ㄲ